애쉬의 동조 실험
자신과 다른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모두가 ‘예’라고 할 때 혼자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회심리학자들은 일련의 실험을 통해 사람이 얼마나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 존재인지 보여주었다. 일반적으로는 동조가 단순히 남들의 행동이나 유행을 따라하는 현상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집단의 압력에 굴복해 자발적으로 개인의 신념이나 행동을 버리고 집단을 따르는 현상을 의미한다.
편견 연구로도 유명한 쉐리프는 자동운동 현상(autokinetic phenomenon)을 이용해 집단의 규범이 형성되고 동조가 일어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자동운동 현상이란 주변의 사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불빛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으로 일종의 착시(착각 참조)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안구의 미세한 움직임 혹은 떨림에 따라 불빛이 맺히는 망막상 위치가 변하기 때문이다. 밝은 곳에서는 주변의 사물들이 함께 지각할 수 있어서 이 현상을 경험할 수 없다. 캄캄한 밤에 별이나 위성을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미확인비행물체(UFO)로 착각하는 이유도 자동운동 현상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연구자는 캄캄한 실험실에서 작은 불빛을 참가자들에게 보여주고 이 불빛이 움직이고 있는지, 움직인다면 과연 얼마나 움직이는지를 판단해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한 명씩 실험에 참가하게 했다. 그들은 불빛의 이동 거리를 혼자서 판단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의 대답은 1인치에서 7인치로 다양했다.
두 번째 시행부터 쉐리프는 참가자들을 한 곳에 모아놓았고, 참가자들은 다른 참가자들의 반응을 자연히 듣게 되었다. 동일한 실험이었음에도,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알게 된 참가자들은 자신의 판단을 서로에게 맞추려는 경향을 보였다. 급기야 세 번째 시행에서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우리는 이처럼 불확실하고 애매한 상황에서 타인에게 동조하는 경향을 뚜렷하게 보인다. 아무래도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타인의 반응을 준거로 삼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애매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밀고 나갈 수 있을까? 대표적인 동조실험이라고 할 수 있는 애쉬(Solomon Asch)의 실험을 살펴보자.
참가자들에게 아래처럼 길이의 차이가 명확한 그림을 보여주고, 왼쪽 선분이 오른쪽의 세 선분 중 어느 것과 같은지 보고하게 했다. 정답이 C라는 것은 너무 자명하다. 그런데 이 실험의 참가자들 중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실험 협조자들이다. 이들은 연구자로부터 틀린 대답을 하라고 부탁받은 상태였다.
연구자는 참가자들에게 정답이 무엇인지 순서대로 말해달라고 했다. 가짜 참가자들은 모두 A라는 오답을 자신 있게 말했다. 이윽고 뒤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은 진짜 참가자의 순서가 다가왔다. 이 사람은 자신의 생각대로 C라고 대답할까, 아니면 모두가 정답이라고 하는 A라고 대답할까? 결과는 놀라웠다. 무려 37% 정도의 사람들이 집단의 오답에 동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여러 차례 시행한 결과 75~80% 정도의 사람들이 적어도 한 번은 집단의 오답에 동조했다.
애쉬는 애매한 상황이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명확한 상황에서도 동조가 일어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집단이 세 명 이상으로 커지더라도 동조 현상이 더이상은 증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동조를 위해서는 세 명이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세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곧이 믿게 된다는 뜻인 삼인성시호(三人成市虎) 역시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종종 접하게 된다. 많은 이들은 사람들의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정작 이들은 “친구가 하니까 그냥 저도 했어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들의 행동보다 태도에 문제가 있다면서 도덕성과 윤리가 땅에 떨어졌다느니, 요즘 아이들은 문제라느니 야단법석을 떤다. 물론 애쉬의 실험 결과로 이들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으나 분명 우리가 주위 사람들의 판단과 행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애쉬의 실험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피해나 손해를 입히지 않기 때문에 동조가 쉽게 일어난 것은 아닐까? 혹시 다른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을까? 이 실험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애쉬의 제자 밀그램은 이러한 의문을 품었으며, 그는 이후에 복종 연구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